조선일보_[더 나은 미래] [Cover Story] 지리산 종주 35.7㎞… 한걸음마다 지구촌 이웃에 희망이 쌓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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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 [Cover Story] 지리산 종주 35.7㎞… 한걸음마다 지구촌 이웃에 희망이 쌓여요

11년간 꾸준히 이어온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 1㎞당 일정 후원금 지원
학생들 토론·투표 거쳐 나눔 실천할 곳 직접 골라
"이번엔 방글라데시에 직업교육훈련 도울래요"
도시락 모임·멘토 운영 선후배 간 벽도 허물어 "학교 폭력? 저흰 몰라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았어요. 눈앞에 수백개의 계단이 나타날 때마다 한숨이 계속 나왔죠. 오르락내리락, 하루에만 지리산 봉우리 4개를 넘는 강행군이었으니까요. 3박 4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눈물도 나왔어요. 천왕봉 정상은 왜 그리도 멀리 있는지, 만약 저 혼자였다면 절대 완주하지 못했을 거예요."

윤이레(16)양이 지난 5월의 지리산 종주를 떠올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던 지리산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땀으로 범벅이 돼버린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잊고, 침상에 머리를 닿자마자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하고 험난한 일정이었지만, 막상 천왕봉 정상에 오르고 나니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단다.

지리산 종주를 하고 돌아온 임진강(맨아래)선생님과 '독수리학교' 학생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독수리기독학교(이하 독수리학교)'가 2002년 개교 이래, 지난 11년 동안 꾸준히 시행해 온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5월, 독수리학교를 다니는 저학년(중학교 1~3학년) 학생들이 떠나는 연례 교육 행사다. 학년별로 3명씩 총 9명이 한 팀을 이뤄 지리산을 오르게 된다. 대안학교인 독수리중학교 전교생 수는 95명. 선후배가 골고루 조합된 총 10개의 팀은 2개월 전부터 지리산 종주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눔 교육'이 가장 먼저다.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개발도상국의 식량 부족 문제에 대한 영상을 보고, 팀별로 이들의 빈곤과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토론·발표했다. 발표가 끝나면 투표에 들어간다. 독수리학교는 매년 개발도상국에서 지역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국제개발 NGO와 연계해, 학생들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을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는 에티오피아 지역에 식량을 전달하는 것과 방글라데시의 주민들에게 직업훈련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반수 이상의 학생들이 방글라데시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윤주환(16)군은 "방글라데시 주민들에게 재봉틀을 지원하고, 기술자로부터 교육을 받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그 마을의 구조적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에티오피아에 일시적으로 식량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답했다.

'독수리학교'에는 선후배 간의 갈등이 없다. 지리산을 오르며 하나 된 이들은 1㎞당 후원금을 모아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도울 곳이 선정되면, 학생들은 후원자를 찾기 시작한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거리는 총 35.7㎞. 학생들은 지리산 완주를 약속하며, 1㎞당 일정 금액을 후원받는다.

가족, 친척, 친구 등 누구든 이들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후원금을 모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눔 교육 시간에 배운 개도국의 식량문제를 설명하고, 나눔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한 차례 나눔교육이 이뤄진다.

이레양은 "같은 팀 선후배들과 함께 마이크를 들고 교회 성가대분들 앞에 서서 방글라데시 식량 문제를 이야기했다"면서 "후원을 받으면 '지리산을 완주하고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약정을 하고, 지리산 종주 후 후원자들에게 해당 약정서를 전달해야 하는데, 나눔에 동참해 주신 분들 얼굴이 떠올라 책임감이 생기더라"고 전했다.

지리산 종주를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는 팀별 도시락 모임을 실시한다. 점심시간마다 모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이미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선배들은 힘들었던 점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공유한다. 지난해 지리산 종주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이야기도 나눈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해진다. 9학년(중3) 조장들은 조원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별도의 리더 교육도 받는다. 박서은(19)양은 "처음엔 서로 어색해서 말없이 밥만 먹고 돌아갔는데, 나중엔 점심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왁자지껄해졌다"면서 "선후배끼리 껄끄러운 경우가 많은데 미리 친해지고 나서 지리산에 오르니, 단합이 더 잘됐다"고 귀띔했다.

독수리학교는 지리산 종주 외에도 선후배 간의 원만한 교류를 위한 별도의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봄, 학기를 시작할 때 7학년(중1)부터 12학년(고3)까지 학년별로 2명씩 총 12명과 교직원을 묶어 소모임을 구성하는 것.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선배들은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한다.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날엔, 고학년(고등학교 1~3학년)들이 해당 소모임의 후배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간식과 편지를 들고 나타나 이들의 이후 일정을 응원한다. 서은양은 "지리산 종주를 통해 2개월 동안 선후배끼리 서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끈끈해지는 것 같다"면서 "우리 학교에 선후배 사이의 갈등이 없는 이유도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 영향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독수리학교가 11년간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을 지속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7년간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에 오른 임진강(36) 선생님은 "지리산에 오르면서 자기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딛고,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 정신을 배우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며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덧붙였다.

"학생들이 모든 과정을 이끌어갑니다. 밥을 하는 방법, 산을 오르는 방법 등 어떤 것도 선생님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지리산 천왕봉 정상을 함께 오르자'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3박 4일 동안 똘똘 뭉치지 않으면 완주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생겨나는 여러 갈등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밀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리산 종주 전에 배웠던 나눔 교육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 외에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죠."

지리산을 완주하고 나면, 후원자들에게 약정서를 전달하고 해당 금액을 모금한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국제개발 NGO에 전달돼 개발도상국의 지역개발사업에 사용된다. 올해는 2600만원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 전달했다. 독수리학교는 지리산 종주를 통해 지난 2009년에는 에티오피아에 도서관을 지었고, 2010년에는 가나에 물탱크를, 2011년에는 토고 어린이를 위한 수도 및 세면 시설을 설치했으며, 올해는 방글라데시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등록된 부모들의 자립을 위한 직업훈련 사업 지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사후 '나눔 교육'도 이뤄진다. 전교생이 모여 지리산 종주를 통해 모인 후원금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된 지역개발사업의 내용을 듣고, 달라진 마을 주민들의 삶을 영상으로 보게 된다. 임 선생님은 "나의 작은 나눔이 지구촌 이웃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배우는 시간"이라면서 "학생들 대부분이 사후 교육 과정에서 나눔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선후배 간의 갈등을 끈끈한 유대감으로 바꾼 나눔 교육 덕분일까. 최근 떠오른 학교 폭력, 자살 등 청소년 문제들로부터 '독수리학교'는 멀찍이 비켜서 있는 듯 보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5/2012062501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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